뉴스 제목만 보면 "부동산 위기"처럼 들립니다. 경매 물건이 13년 만에 최대라니까요.
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. 물건은 넘치는데, 서울 아파트 경매 낙찰가율은 100%를 웃돌고 있습니다. 감정가보다 비싸게 팔린다는 뜻입니다. 성동구 금호동의 한 아파트는 지난해 40명이 경쟁하며 감정가의 160% 가격에 낙찰됐습니다.
경매 물건은 쏟아지는데, 왜 낙찰가는 오히려 오르는 걸까요? 이 역설을 이해하는 게 지금 경매 시장을 제대로 읽는 출발점입니다.
숫자부터 보겠습니다
올해 1분기(1~3월) 법원에 접수된 신규 경매 신청 건수는 3만 541건입니다. 2013년 이후 13년 만에 최대입니다. 연간 흐름을 보면 추세가 더 뚜렷합니다.
2023년 → 10만 1,145건 (2014년 이후 처음 10만 건 돌파)
2024년 → 11만 9,312건
2025년 → 12만 1,261건 (2009년 이후 16년 만에 최대)
2026년 1분기 → 3만 541건 (연간 환산 시 2009년 수준 근접 가능)
2009년이 어떤 해였는지 기억하시나요? 리먼 브라더스 파산으로 전 세계 금융위기가 터진 직후였습니다. 그 수준의 경매 물건이 지금 쏟아지고 있다는 겁니다.
왜 이렇게 많이 나오는 걸까
2021~2022년을 떠올려봐야 합니다. 그때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0.5%였습니다. 시중 대출금리가 2~3%대였죠. "지금 안 사면 평생 못 산다"는 분위기 속에서 대출을 최대한 끌어다 집을 사거나 상가를 매입한 사람이 많았습니다.
그런데 기준금리가 3.5%까지 치솟으면서 이자 부담이 2~3배로 뛰었습니다. 여기에 경기 침체까지 겹치면서 버티던 사람들이 결국 손을 들기 시작한 겁니다. 경매 신청은 채권자(주로 은행)가 돈을 못 받자 법원에 담보물 처분을 요청하는 행위입니다. 즉, 경매 신청 건수가 늘어난다는 건 "빚을 못 갚겠다"는 사람이 그만큼 늘어났다는 현실의 반영입니다.
경매 시장의 역설 — 물건 많은데 낙찰가는 왜 오르나
공급이 늘면 가격이 내려야 하는데, 서울 아파트 경매 낙찰가율은 오히려 오르고 있습니다.
2024년 → 92.0%
2025년 → 97.3% (2021년 이후 4년 만에 최고)
2026년 1월 → 107.8% (2022년 6월 이후 최고)
이유가 있습니다. 정부가 서울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으면서 일반 매매는 관할 구청의 허가가 필요하고 실거주 의무도 붙었습니다. 그런데 경매는 이 규제에서 제외됩니다. 경매로 아파트를 낙찰받으면 구청 허가 없이 살 수 있고, 대출을 쓰지 않는다면 갭투자(전세 끼고 매수)도 가능합니다.
규제를 피할 수 있는 합법적 통로가 경매밖에 없다 보니, 현금 여력이 있는 투자자들이 경매로 몰린 겁니다. 지난해 경매 법정에서 물건 2,333건 중 49%가 낙찰됐고, 물건당 평균 응찰자 수도 8.19명으로 2017년 이후 8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습니다.
자산별로 완전히 다른 두 세계
지금 경매 시장은 아파트와 비아파트가 완전히 다른 흐름을 보입니다.
서울 아파트는 낙찰가율이 100%를 넘습니다. 성동구 110.5%, 강남구 104.8%, 강남 프리미엄 단지는 150~160%에 낙찰되는 사례까지 나왔습니다. 경매로 사는 게 일반 매매보다 비쌀 수 있는 상황입니다. "싸게 살 수 있다"는 기대로 뛰어들면 오히려 손해 볼 수 있습니다.
빌라·연립주택은 정반대입니다. 올해 4월 주거시설 경매 진행건수 중 비아파트가 전체의 72.2%를 차지하고 있습니다. 전세사기 여파와 임대사업자 보증 축소가 직격탄을 맞은 결과입니다. 사려는 사람이 없어 유찰이 반복되고, 회차마다 최저가가 20~30%씩 내려갑니다.
상가와 공장도 역대 최대 물건이 쌓이고 있습니다. 자영업자 폐업 증가와 공실 급증이 원인입니다. 강남 대치동 꼬마빌딩이 감정가 97억 원에서 두 차례 유찰돼 62억 원대까지 내려온 사례도 나왔습니다.
경매 투자 실전 — 리스크 먼저 알아야 합니다
명도 비용 — 낙찰 후 기존 점유자를 내보내는 데 협의가 잘 되면 빨리 끝나지만, 소송까지 가면 수개월에 수백만 원이 들어갑니다.
숨은 비용 — 낙찰가 외에 취득세, 명도 비용, 수리비, 대출이자까지 합산해야 진짜 수익률이 나옵니다. 이걸 뺀 채로 계산하면 싸게 샀다고 착각하게 됩니다.
지금 경매 시장에서 현실적으로 주목할 구간
지금 당장 뛰어들기보다는, 어느 구간을 봐야 하는지 방향을 잡는 게 중요합니다.
유찰이 2~3번 반복된 비아파트 물건 중 입지가 검증된 곳이 대상입니다. 빌라라도 역세권, 학군, 재개발 예정 구역 등 입지 조건이 뒷받침되는 물건은 낙찰가가 내려갈수록 투자 매력이 올라갑니다. 반면 서울 아파트 경매는 낙찰가율이 100%를 넘는 지금, "싸게 살 기회"라는 전제가 성립하지 않습니다.
